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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쓴 반전과 못쓴 반전차이


잘쓴 반전 : 예측이 가능해도 재미있음
잘못쓴 반전 : 예측이 불가능한데 쓰는 작가 또한 그러함

잘쓴 반전의 경우는 많지만 하나 꼽자면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이야기를 끄는 대상을 바꿔가며 페이크를 주는데, 이게 마지막 반전에 극적인 연출을 굳이 직접 부여하지 않아도 여운이 어미무시함. 개인적으로 몇번을 읽어도 잘 썼다 느끼는 작품임.

이게 중요한 이유는 반전소설을 읽을때 ‘뭐야, 그런거였어?’하고 끝나면 소설이 단 한번 읽히기 위해 쓰여진 느낌, 소위 말하는 스낵류의 서사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잘 쓴 반전소설은 반전을 읽고 난 뒤에 이야기 자체가 달라지며, 이 반전이 그거였어? 하고 다시 읽고, 기법에 감탄하며 다시 곱씹음.

반면 ‘이야미스’라는 장르를 알고보니 요즘 반전이 참 가볍게 여겨지는구나 싶더라.

작가에게 있어 유연성도 중요한데 구체적인 플롯까지는 아니어도 중심이 잡혀있어야하는 이유임. 반전으로 주객전도해서 서사 중심을 흔드는 시점에서 그 반전은 독이 돤다. 애시당초 잘 쓴 반전 소설은 중심이 흔들리지도 않고 의미전달이 확실해서(반전까지 포함해서)하나로 묶이는데, 못쓴 경우는 반전만 따로논다.

반면 너무 장기적으로 연재되는 경우는 이런 반전 자체가 오래걸려서 구조의 변화가 있기모양. 퀼트식 서사라 그런 느낌? 잘 이어붙이면 예쁜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문제다.

그러면 소설이 스낵류면 왜 안되는가? 라는 반문으로 방향이 튀기 마련인데, 미스터리류가 이런 구조가 반복되다보니 이야미스라는 장르가 나오고, 서사 구조 자체가 붕괴되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평이하다 여기는 해피엔딩이 제일 무난할 정도다. (배드엔딩은 뒷맛도 찝찝한데 엔딩까지 구리면 정말 기가막히다)그럼 오히려 묻겠는데, 소설에 왜 굳이 반전이 들어가야하는가? 이건 소설 자체에 대한 장르의 포용성 문제가 아니라 쉽게 말해 도파민만을 갈구하는 현시대의 성향이 반영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가볍게 읽는 부류중에서도 너무 재미있어서 여러번 읽는 것도 많이 있고, 설정이 상세하고 주제가 철학적인 것도 많음. 만화는 물론이고. ‘가볍게 읽는다‘는 개념은 한번 읽고 끝인 서사가 아니라 부담이 없는 서사라는 얘기 아닌가?
애초에 잘 읽히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소설은 문체가 쉬이 읽히거나 용어를 쉽게하는 것이지(레이먼드 카버, 헤밍웨이나 서머싯 몸처럼)자극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님. 반전이 또 반전이야? 로 끝나면 의미없다는 소리다.

예측못한 반전에만 집중하면 반전에만 치중하기 마련이고 예측가능한 반전을 쓴다면 반전 외의 것에 신경을 쓰게된다. 어느쪽이 재미를 더 갖췄는지는 뻔하고. 예측 불가능한 파티를 준비해 하루만에 파티주제마저 바꿔 급조를 하든(숨겨야하니 급조밖에 할 수 없음), 예측 가능해도 파티 그 자체에서 기대하지 못한 음식, 인물의 등장에 소소한 반전을 두든.

참고로 마지막까지 작가만 아는 반전도 나는 무척 별로다. 그럴거면 출판하지말고 혼자 쓰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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