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위의 누군가가 널 좋아하거든
같은 작가의 ‘제5도살장’보다
좀 더 요즘에 와닿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더 취향이었다.
트랄파마도어라는 행성에 사는 외계의 종족은
지구에 속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사는 인간인 작가의 한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일배출구가 아니었나싶다. 노골적이기를 포기했으나 그때문에 더 노골적이랄까.
스스로가 누구인지 잊고살때 인간은 더 적나라하게 본성을 드러내는 법이지만 결국 근간은 여전히 무지함이
남아있다. 무지함은 지식의 부재를 상징한다기보다 ‘알려고 하지않음’에 있으며 스스로를 이미 정해진 세상에 던져 타인의 삶을 대신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콘스탄틴의 삶을 증오하는 것이 옳으냐, 이또한 오만한 행위다. 작중 대놓고 윈스턴조차 딱히 신과 가까운 존재는 아니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결국 타인의
삶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 좌지우지하려는 것또한 오만이다. 윈스턴은 콘스탄틴과 비아트리스의 오만을 조롱하지만 그 행위 또한 오만인 것이다.
마지막에 대한 해석을 망상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부 사라졌기에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고 드디어 제대로 ‘살아간’ 콘스탄틴에게(타이탄에서의 삶이 일종의 속죄로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결국 아름다운 연인 셋도 없는 이만 못한 존재였고)주는 일종의 회개개념으로 이해했다.
그 의미가 바로 기독교의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 가서 ‘어떻게 지내나, 조?’라고 말하면, 그 사사람은 ‘아, 잘 지내지. 이 이상 좋을 수 없다네‘라고 말하지. 그때 그 사람 눈을 들여다보면, 실은 더이상 나쁠 수 없다는 걸 알게 돼. 핵심까지 내려가면 모두가 그야말로 형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 모두가 말이야. 가장 나쁜 건 그 무엇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는 거고.“
스스로가 이런 상태라고 느끼는 사람이 읽으면
와닿을 책인것 같다.
+
이 작품을 접한 계기는
윈스턴이라는 캐릭터와 이 소설이
왓치맨의 ‘닥터 맨해튼’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접하고 호기심에 집어든 거였다.
읽어본 감상으로는 영향은 있겠으나
추구하는 방향성과 해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타이탄의 세이렌은 종교적인 색도 드러나지만
왓치맨의 닥터 맨해튼은 그 존재가 인간이 만들어낸 오만함(핵)과 집결되어있고 실제로도 인간의 오만함을 보여준다. 윈스턴과 달리 자아가 도취된게 아니라 말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인 것이고(윈스턴과 오지만디아스가 오히려 흡사하다 느꼈고)이는 셀로를 대하는 태도로도 느껴진다. 구조적 유사함이야 있겠다만 현실세계든 다른 작품이든 오리지널리티를 완벽히 주장할 수 있는 작품이 몇없기도 해서.
둘다 각자의 매력으로 수작이다.
역시 인터넷 견해나 그 결집체는 무조건 신빙해서는 안되고 직접 보는게 답이다라는 소신에 확신을 더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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