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사랑에는 꼭 인간을 사랑하는 형태만 있을까? 일본 드라마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에서 게이샤인 모모코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 사랑이라는건 이런 형태도 있다고 말한다. 정년이에서 강소복은 채공선은 명창 채공선을 사랑했기에 떡목이 되었을때 노래를 부를 수 없었지만,
정년이는 국극을 자기자신보다 사랑하기 때문에 괜찮을거라 말한다. 세상에는 그런 형태의 사랑도 있으며 모든 사랑이 그렇듯 이 사랑 또한 사람을 나아갈 수 있게한다.
주인공 이치에의 기술은 할머니가 해온 방식을 이어받고 있으면서 동시에 온갖 현대의 세련된 것이 모인 백화점의 후지이를 러브콜을 받는 다소 애매한 위치에 놓여있다. 그렇다고 할머니를 뛰어넘을수도 없고 새로운 기술을 다시 배울수도 없다. 하지만 이 애매함은 결국 이치에의 독보적인 기술이며 이미 일부이다.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형태로 이치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그들 삶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었다.
예전에 책을 수선하는 프랑스장인이 나온 다큐를 본적이 있다. 예전의 책들은 그야말로 옷처럼 한땀한땀 꿰매어 엮였기에 이미 그런 책들이 나오지않는 현대에서도 장인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장인을 시대에 뒤쳐졌다고 하지만, 그 다큐에서는 그 사람밖에 고칠 수 없는 책들을 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기술에 감히 가치를 매길 수 있는가?
일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서사는 음식이 어떤 위로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기운을 차릴 기분이 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건 자신을 위로하는 다른 언어이기도 하다.
미나미 양장점에서는 이 치즈케이크를 하나 다 먹는 씬이 꽤 유명하다. 이 케이크는 이치에의 루틴이기도 함과 동시에 마음을 대변해주기도 한다.
케이크의 맛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건 자신이다.
할머니는 병에 걸려서도 침대 위에서
제 바느질에 잔소리를 하면서 손바느질로 가르쳐주셨어요 떨리는 손으로 말이죠.
그래도 꿰맨 자리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스스로 부디 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
힘든 세상이다.
사랑없이는 살수 없을것 같다.
그렇다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취미의 형태로라도 찾아보는것이 어떨까.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고 기운나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치즈케이크를 정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걸 먹으며 스스로를 위로해주자.
당장 해결되는 것이 없더라도, 한걸음 옮길 힘은 나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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