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은 마음의 눈으로 보기에 따라 다르다.
주인공은 헤스터 프린이라는 여성으로 그녀는 시작부터 가슴에 이미 주홍글씨를 새기고 등장한다.
즉, 간통이라는 죄를 짊어지고 시작하는 것이다.
헤스터는 아이를 단장하는 데 드는 약간의 비용 외에는 모든 돈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썼다. 사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자기 신세보다는 나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헤스터의 손길에 침을 뱉거나 모욕을 주가 일쑤였다.
그들은 서슴없이 ‘A’자를 유능(Able)의 머리글자라고 말했다. 나약한 여자의 힘이 이토록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씐 여성의 이야기라면 이 이야기는 주체성이 결여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헤스터는 스스로를 주홍글씨가 달라보일 정도로 증명해보였다. 물론 이 작품에서는 여성에게만 주홍글씨가 새겨지는 상황의 부조리함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준다.
특히 놀란건 헤스터가 개혁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현대에도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첫째, 세상이 달라지기 위해서는 사회의 기존 제도와 조직을 헐어 버리고 새로 지어야만 한다.
둘째, 남성의 본질이나 남성의 본질로 인해 굳어 버린 오랜 전통적 습관을 본질적으로 뜯어 고쳐야한다. 그래야만 여자가 정당하게 적절한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난관이 해결된다 하더라도 여성 자신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한 여성들은 이와 같은 예비적인 개혁의 혜택을 보지 못 할 것이다.
헤스터가 속죄하는 과정은
죄를 뉘우칠때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보여준다.
그녀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면 이것으로 그치겠지만
주홍글씨의 상징성(헤스터가 주홍글씨를 꿰맨 옷을 입고 처형대에 서는 장면), 동조하는 대중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특히 공감되는 부분은 이것.
대중들은 변덕쟁이 폭군과 같다.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면 그것을 거부하는 힘도 크게 생기지만, 폭군의 마음에 들도록 관대함에 호소할 때는 정의 이상의 어떠한 탄원도 좋아하는 법이다.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보다 더 심한 인터넷이라는 주홍글씨가 존재한다. 때로는 이정도까지 비난받아야하는가? 싶은 경우도 많다.
너희들 중 죄없는 자만이 이 여인에게 돌을 던져라.
어쩌면 이같은 사회현상은 허술하고 부패한 법체계가 만든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 사람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비난과 비판은 다르다. 증오보다 사랑을 택할 수 있다면 사랑을 택하라는 말이 있듯 - 커버할 수 있는 부족한 부분은 흐린 눈해주는 습관이 필요할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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