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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계획

031. 혼란


관리인은 모든 인간이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당연하기 기억할, 잊어버린 자신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본래 누구였는가? 그는 관리인으로 지내는 동안 전부 잊고 살아야만했다. 인간인 그는 이 세계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본 - 일레인을 빼닮은 - 후손으로 추정되는 여성의 등장은 그를 흔들었다. 그가 잊고 있던 것이 새어나오며 그의 머리를 장악했다.

일레인, 한때는 자신의 친구이자 이해자, 동료였으며 - 그리고 마음을 주고 받은 사이였다.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지만 그녀는 정신에서 만큼은 여왕이나 다름없을 품격을 지녔었다. 실제로도 관리인 -그때에는 분명 이름이 있었을거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어떻게 불렀는지는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 은 그를 여왕처럼 대했다. 그게 다였다. 일레인과 어떻게 헤어진건지? 자신은 어쩌다 이 세계로 온건지? 왜 시간은 그렇게나 흘렀는지?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일레인에게 후손이 있음은 그가 자신을 잊고 새출발들 했다는 셈도 되었다. 차라리 다행인 일이지,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을테니까.

그러면서도 관리인은 내심 ’일레인‘에게서 나온 흑수정 조각을 보고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그 수정은 일레인에게 준 마지막 이별 선물이었다. 분명 슬픈 상황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텐데, 자신은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일레인에게 작별을 고했던 것일까.

어쨌든 일레인의 후손 - 그와 빼닮은 이를 이곳에서 죽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랬다가는 일레인의 숭고함을 거역하는 셈이 될테니까. 하지만 우선해야할 것도 잊지않았다. 우선은 여왕에게 보고가 먼저다. 아마 사정을 얘기하면 여왕은 일레인을 안전하게 내보낼 방법을 취해줄 것이다. 인어들도 보호받을 수 있겠지…그리고 자신은 이 세계에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면 된다.

음? 숲속에 인기척이 있다. 익숙한 피비린내…아니, 잠깐. 이쪽으로 다가온다. 세상에, 그 놈이 말라죽었군. 인어는 물에서 너무 멀가면 안되건만…저 자는 그러고보니 왜 그 마녀에게 동조했을까? 인어라는 종족이 자신들의 안위보다 다른 이들을 믿어 동족 안위를 해치면서까지 달성해야했던 목적이 뭐란 말인가, 분명 세뇌는 아니건만…그리고 옆에 있는 자는…처음 보는 종족인데…설마…아냐 그럴리가 없지. 일단은 숨어서 동태를 지켜보자, 그리고…

“쥐새끼가 있다. 아니, 이 냄새는 - 인간이다.”

여기서 관리인의 기억은 끊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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