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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계획

007. 오감


낭자한 선혈이 흰색옷을 점점 물들여갔다.
통증을 느낄 여유마저없이 일레인은 정신을 차리려 안간힘을 썼다.

저 이빨은 뭐지?
사람의 이빨이라기에는 마치 짐승처럼…

방금전까지 선하고 안쓰럽게 느껴지던 로드모어의 눈에 핏줄이 솟아있었다. 광견병 환자같은 몰골이었지만 일레인의 머릿속에서는 잊으려했던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저 남자가 인간이 아니라면?
나는 이대로 과다출혈로 죽는건가?
아니, 내가 죽어 막지못해
저자가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생명의 줄다리기와 직업적 사명감.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엄습했던건 서늘하고 어두운 경찰서에서 자신만 있다는 두려움, 외로움이었다.

일레인은 일어나야한다는걸 알고있다.
알고 있었지만 무거운 족쇄가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다. 이러면 안돼, 일어나야해…일어나야한다…
일어나지 않으면…

깨끗했던 바닥에 자신의 흔적이 새겨졌다. 선명한 붉은색, 차갑게 식어버린 생의 원료. 짙게 깔린 어둠의 커튼…그리고 눈앞에서 무엇인지조차 식별 불가능한 존재 -

일레인은 기절하기 직전 시야가 흐려져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 외의 오감은 상황을 기억했다

씁쓸한 철의 맛
고약한 냄새
창문이 깨지는 소리
누군가가 자신을 흔드는 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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