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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57) - V.

그뿐이야, 내 불행한 소년. 우리가 하는 짓도 연극일 뿐이라고 생각한 일 없어? 우린 너희들보다 나이를 더 먹었어. 한때 우린 너희들 속에서 살았지. 즉 다섯번째 갈비뼈라는 거였다고.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뼈 말이야.우린 그때 모든걸 배운거야. 그러고 나선 우린 너희들이 텅비었다고 생각하는 그 심장에 자양을 주는 놀이를 하기 시작한 거지. 지금은 너희 모두가 우리 안에서 살게 됐어.

일전 서머싯 몸이 미국 소설이 다른 소설에 비해 바탕으로 둔 정통이 없어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런 방식을 취한다.
‘브이’라는 대상을 특정 인물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이자 개념, 혹은 지향하는 목표로 두면서 때로는 곁에 있고 침범당하고 휘젓는 혼돈 - 이를테면 작품에 묘사되듯 전쟁과도 같은 여성으로 그려진다. 브이를  추적하기 보다는 브이를 갈망하는 인간(주로 남성)에 초점을 두는 편이 읽기 편하다.

사실 그는 V.의 성별이 무엇인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성별뿐 아니라 V.의 속이나 종이 무엇인지도 전혀 몰랐다. 젊은 여성 관광객 빅토리아와 하수구의 쥐 베로니카를 동일시하고 그들이 V.라고 추정한다고 해서 그가 윤회를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만 자신이 뒤쫓는 사냥물이 빅토리아가 베이수 계획에 맞아떨어지고, 베로니카가 쥐들의 새로운 질서에 맞아떨어졌듯이 ‘큰일’, 즉 세기 최대의 음모에 맞아떨어진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가 역사적으로 실재한다면 틀림없이 그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존재하고 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름이 없는 계획’, 그 원대한 계획은 지금까지도 성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V.가 여성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소설이 언급되는 ‘브이 포 벤데타’와의 연관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작중 브이 역시 이런 식의 연출기법을 써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의미에서는 이비가 브이를 잇는 것이 본 뜻에 맞는 복선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여전히 욕구는 남았잖아요.“ 그녀가 항의했다. ”지금도 결핍을 느끼고 있잖아요. 대체 뭘로 그 공백을 채울 수 있죠?“

미국이라는 나라를 이루는 요소가 그렇듯 복합적이고 다채로운 인종과 문화(종교)가 나온다. 그들이 이제는 자리잡아야 할 이 땅에서 각자의 방식과 사고대로 살아가고 부딪히며 때론 죽기까지 하는 이 여정이, 그리고 그들이 원해서든 아니든 삶의 여정에는 저마다 여자가 있는데, 때로는 외로움을 채우고 때로는 의지하고 때로는 사랑하며 때로는 동정하고 때로는 호기심이 들게 만든다. 그들은 전통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각기 입체적이고 때론 적극적이다. 그들은 어떤 관점에서는 남자라는 등장인물을 이끌게하는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브이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작가가 썼을)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인간으로의 번뇌와 주어진 삶을 살면서 마주하는 모순을 지적하면서도 결국은 방황하는 그들에게 삶을 다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사해주기도 한다.

새벽 3시의 불안감, 과격한 발언, 살아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대상으로 한 환각적 정치행위, 이런것들만이 우리에게 남아있는 겁니다.

오늘날 세상은 진공 속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얼굴을 찡그린 채로, 사명감을 가지고 쓸 만한 인물이 되고 착취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기억은 배신자와 같다. 그것은 계석해서 미끄러져 가면서 형체를 바꾼다. 슬프게도 말이란, 아무 의미 없는 현상일 뿐이며, 정체상이리는 것이 단 하나라는, 그리고 영혼이라는 것이 항구적이라는 잘못된 가정 위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더러가 죽으면 더러는 삶을 계속한다. 머리카락 한 가닥기 빠진다거나 손톱 한 개가 빠진다고 해서 내가 그만큼 덜 살아 있거나 덜 또렷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끝까지 살아남으리라는 사실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꼭 살아남아야 했다

‘한 세대’의 청춘은 1940년 6월 8일에 떨어진 최초의 폭탄과 함께 돌연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옛 중국의 발명가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슐체, 그리고 노벨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성능이 훌륭한 미약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번 복용하면 ’세대‘는 일생 동안 면역이 된다.

내가 인상깊었던 건, 생존수단이 젊음, 몸밖에 없는 여성의 삶을 수동적으로 인형극인양 표현한 부분이다. 그것은 화려하고 일종의 쇼처럼 보이지만 한 여성(멜라니)의 삶을 수동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것을 벗어나 외부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멜라니의 반응은 슬프면서 그가 정조대를 벗어버린 이유를 납득시켜 주기도 한다.

넌 물체니까 수동적으로만 남아 있을 거야? 물론 그렇겠지. 그것이 바로 너니까. 페티시

내게 다시 돈이 생긴다면 난 내 오락을 위해 오케스트라와 무용단을 고용해서 그들로 하여금 <강간>을 공연하게 하겠어. 이것이 어떤 물건인가 보기 위해서. 어쩌면 나도 야유를 던질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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