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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학적으로 스트레스 상태에 있을 때 (사람이든 물고기이든) 유기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 저장된 지방을 이용하며, 이런 작용으로 인해 지방조직 내에 축적된 DDT가 혈액 속으로 스며나와 치명적인 영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의 조절 능력은 화학약품에 흠뻑 젖은 현대사회에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저항력 강한 유럽산 느릅나무를 심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종의 다양성이 중시되어야 전염병으로 나무들을 잃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동식물 집단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열쇠는 영국의 생태학자 찰스 엘턴(Charles Elton)이 말한 ‘종 다양성 유지’에 있다.

“근육 조절이 안 되어 날거나 설 수 없음에도 새들은 옆으로 드러누워 계속 날갯짓을 해댔다. 발톱을 오그리고 부리는 반쯤 벌린 채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이보다 더 불쌍한 것은 얼룩다람쥐였다. “죽음에 이른 얼룩다람쥐의 모습은 특별하다. 몸을 웅크린 채 앞발로 가슴을 잡고 있었다. ……머리와 목은 축 늘어졌고 입에는 더러운 흙이 들어 있었는데, 불쌍한 다람쥐가 죽어가면서 땅을 물어뜯기라도 할 듯 몸부림쳤음을 알려준다.”

“살충제를 뿌리는 사람들은 그 약품이 ‘새에게는 무해하다’고 강조했지만 울새들은 바로 그 약품의 독성 때문에 죽어갔다. 새들은 평형감각 상실 증세를 보이더니 몸을 떨기 시작했고, 그러고는 심한 경련과 함께 죽었다.

카슨은 새로운 부가 등장하고 사회적 순종이 강조되던 시기에 이 글을 썼다. 냉전으로 인해 의심과 불관용이 극도에 이른 시대였다. 화학 산업은 전후 기술 발전의 최대 수혜자였고 국가의 부를 이끈 중요한 견인차 중 하나였다.

나는 인간이라는 종(種)에 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나도 교묘하게 행동한다.

  인간은 자연을 투쟁의 대상이자 굴복시켜야 할 상대로 인식한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멸망이란 잘못된 말이에요. 그 무엇도 정말로 파괴할 수 없고 소멸시키는 건 더더욱 불가능해요. 물질의 총량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으니까. 각운동량도 여전히 존재하죠. 그저 물질의 조합 방식이 변하는 것뿐. 카드를 다시 섞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생명은 스트레이트 플러시50 같아서 카드를 한번 섞으면 그걸로 끝이에요.

면벽자였고 검잡이였으며 인류 최후의 묘지기인 그의 노쇠한 그림자가 비석 안으로 사라졌다.

관 씨는 옆에서 잠들어 있고 우산은 호위대장이 들고 있었어. 관솔불도 꺼지고 밤의 어둠이 검은 백조의 깃털처럼 모든 걸 덮고 있었어. 밤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호위대장의 검은 실루엣만 보였지. 그가 쓴 투구가 별빛에 반짝이고 그의 머리칼이 바닷바람에 너울대고 있었어. 우산은 여전히 그의 손에서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우린 이야기 없는 왕국을 떠날 수가 없어요. 영원히……. 어둠이 두려우시면 불을 켜드릴게요.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희열이었다. 밭에서 일하던 청년이 시내에 갔다가 돌아오는 같은 마을 아가씨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지난 3세기 세월도, 몇 광년의 거리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국왕에게는 나라에 이야기가 없는 게 제일 좋아. 이야기가 없다는 건 아무런 사건도 재난도 없다는 뜻이니까 백성들도 아주 행복하지.

“정말로 구원이 출현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지? 인류의 존엄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는데.”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는 한 가지 사실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바로 뤄지가 암흑의 숲 실험을 위해 187J3X1의 항성 좌표를 우주로 전송해 이 항성을 파괴한 후 지금까지 157년이 흘렀고, 공교롭게도 이것은 현대인의 평균 수명과 비슷했다. 또다시 출생률이 유사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멸망이 확정된 이 세계에서 자식을 낳지는 않으려 했지만 자신은 평온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차원 조각의 가장자리는 형태가 없고 눈앞에 펼쳐진 우주는 깊은 호수의 수면처럼 고요하고 아득했다. 은하계의 별바다는 언제나처럼 찬연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광경만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의 다른 차원에 커다란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걸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얘야, 신은 사람이 한 짓을 다 기억하고 계신단다.”
그렇다. 사람이 무슨 짓을 했는지 신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자신도 기억하고 있었다. 5세기 전, 문명인들이 이 대륙에 상륙했다(대부분은 유럽에서 온 죄수들이었다). 그들은 숲에서 원주민을 짐승으로 오인해 총으로 쏘아 죽였다. 자신들이 죽인 것이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알았지만 사냥을 멈추지 않았다. 호주 원주민은 이 광활한 땅에서 수만 년 동안 살고 있었다. 백인들이 상륙했을 때 호주에 원주민 50만 명이 살고 있었지만 얼마 못 가서 거의 백인의 손에 죽고 3만 명밖에 남지 않았다.

한 남자가 나왔다가 망원경으로 그들을 보고는 다시 들어갔다. 그러니까 저렇게 생겼구나, 제임스는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해 동안 맞은편 만에서 바라보았던 등대라는 것은 헐벗은 바위 위의 삭막한 탑일 뿐이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다였다 ─ 단순한 질문이지만, 해가 갈수록 죄어드는 것이었다.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안전이란 없나요? 세상 이치를 아예 외워 둘 수는 없나요? 안내자도 없고, 피신처도 없고, 모든 것이 기적일 뿐, 탑 꼭대기에서 허공으로 뛰어들 뿐인가요?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인생은 여전히 이런 것 ─ 이렇게 놀랍고 뜻밖이고 알 수 없는 것 ─ 일 수 있나요?

그러나 나는 더 거친 바다 밑에서 그보다 더 깊은 심연에 잠기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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