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방어구를 비싼 값에 거래해도 좋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누구 손에 들어갔느냐를 걱정해야하는데 - 이런 거래에 응하는건 인간인 우리들 뿐이야. 큰 리스크로 얻는 큰 이득. 너는 이걸 다른 이가 가지더라도 여왕에게 해를 끼치지 못할걸 알고 있다. 대신 내가 여왕에게 넘기면 - 지금의 이 상황을 알릴 수 밖에 없게되지.”
크로프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걸 느꼈지만 별 수 없었다. 이것으로 관리인을 죽일 수는 없게 되었다. 다만 여왕이 관리인을 버린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가장 큰 위기였던 마녀의 기분은 아까보다 좋아보였다. 크로프는 관리인이 도망가지 않을거란 확신이 들었기에 그를 날세워 감시하지는 않았다. 무슨 꿍꿍이인지는 염려되긴 했지만.
“헌데 감히 자신이 하사한걸 팔아넘긴걸 - 그것도 적의 진영에 가기위해 쓰고자함을 여왕이 안다면 너를 버릴거란 생각은 들지않으냐?”
“어차피 아무 힘도 없는 내가 관리인이 될 수 있었던건 여왕만이 날 믿어줬기 때문이오. 만약 여왕이 날 버린다면 어차피 죽은 목숨, 다시 죽을 뿐이고.“
“그래, 너머에서 인간은 또 다른 이름을 갖추지 못하면 죽을뿐이다. 내 재산이 나의 정체성인 것처럼.”
그는 응접실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러자 숨어있던 어린 아이가 나와 차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이때 아이의 팔에 있던 화상이 관리인의 눈에 띄었다.
’오래되어보이는 상처군…‘
“왜, 너도 아이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한가?“
관리인의 의도를 읽은 마녀가 끼어들었다.
”그리 궁금해할건 없어. 이 아이는 잊어버렸으니 굳이 끄집어낼 필요는 없다“
”너머에 오기전 기억은…역시 차차 사라지는건가“
“말했잖느냐. 여기로 온 자들은 살기위해 온게야. 잊어버리는건 생을 위한 뇌의 발버둥이지. 너머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전의 기억은 의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당신은 - 기억하지않소.”
마녀는 웃으며 말했다.
“내 생은 다른데 기원하니 말이지 - 그리고 그 기억이 나를 너머에서 존재하게 만든다. 너 또한 잊을 수 없는 존재가 있을거고 - 이 아이도 한때는 그랬겠지. 살기위해 아이는 내 수하가 되는 방법을 택했을 뿐.”
”잊지 못하는 존재?“
관리인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기억을 되찾을 방법이 있는겁니까”
“네가 스스로 잊어버린 것이니 잘 알게다. 뭐 지금에와서 그걸 기억해봐야 무슨 소용이겠느냐만은…”
“이름”
관리인이 대답했다.
“이름을 기억해내고 싶은데“
”이제사? 네 이름을 기억하는 자들은 전부 죽었을텐데. 혼례라도 올려 무언가를 남겼다면 또 모르지만 - 그게 너머의 주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때 아이가 마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었다. 신호인듯 했다.
“마법진이 준비가 된듯하군. 본래대로라면 그리 정교하게 그릴것까진 없다만…인간은 나약하니 말이지. 너와는 어째서인지 한번은 더 볼거같구나. 그때는 특별히 할인해서 마법을 시전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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