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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계획

002. 로드모어


처음 그들은 인간과 공생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돌을 쌓아 거처를 만들때도 그들은 결코 화내지 않았다. 도리어 음식만을 받아먹으며 그들의 집을 지켜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세상이 바뀌었다. 인간은 자신들 이외의 존재는 ‘신이 창조물을 만들다 튄 파편’ 정도로 여겼다. 그렇게 대학살이 시작됐다. 실제 칼로 심장을 도려낸것이 아닌 존재의 몰살이었다.

그들은 너나할것없이 서둘러 ‘너머’로 갔다. 그곳에는 자신들과 같은 존재들이 거처할 수 있는 안식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스스로가 이미 인간과 공존한 지 오래되어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까먹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철학적인 주제는 그들 존재에 결코 도움이 되지못했다. 그들은 그저 안락한 집으로 가 인간이 구워둔 피칸파이를 한조각 집어먹고 구석탱이에서 잠이나 청하고 싶었다.

그때, 그들의 리더가 나섰다.
-이제 이곳에 인간은 없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할 것이오. 우선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생존’에 달려있소. 산다면 뭐든 할 수 있게 마련이지. 그러니 서로 뭉쳐야합니다.
그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곧 얼마 지나지않아 그들은 리더를 왕을 뽑았다. 왕이란 본디 고귀한 혈통이 아닌 강하고 현명한 부족장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그들의 리더는 분란을 저지하고 얻어온 생산물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그러면서도 약한 동족을 보호했다. 차츰 다른 종족과의 교류도 이어졌다. 요정들은 인간을 잊어갔다. 처음 그들이 존재했을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자연에서 스스로를 증명해갔다. 흙, 나뭇잎 사이로 퍼져오는 햇살, 기대 쉴 수 있는 커다란 돌 -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그랬듯, 본디 땅에서 나왔던 쇠붙이, 그리고 여자가 그들을 갈랐다.


- 로드모어씨는 그저 자신의 참한 왕비가 보고 싶었다. 볼품없는 자신과는 달리 아리따운 그녀. 그녀는 귓속말로 스스로를 인간이라 비밀을 고백했다. 아아, 이럴수가! 인간은 ‘너머’에서는 살 수가 없다! 만약 들킨다면 부처 스트리트의 인간들처럼 뱀파이어와 웨어울프들의 고깃덩이로 전락할 것이다. 이 가련한 여인은 얼마나 두려울까! 만일 이 여인을 감싼다면 나의 동족들은 나를 헐뜯고, 최후에는 자리까지 내려놓게 하겠지.

하지만 로드모어씨는 상관이 없었다.
그는 이제 동족의 임금님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는 오로지 그녀만의 임금님이면 족하다.

그리고 이 인간투성이 세계에서 그녀만을 만날 수 있다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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