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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54) - 브이 포 벤데타

나? 난 20세기의 왕이야. 난 부기맨이지. 악당이고.
…집안의 말썽꾼이라고나 할까?

잔혹한 현대의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는
착각이 들 정도로 문학적인, 앨런 무어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그래픽 노블이다.
조지 오웰이 1984도 참고한 부분이 있다.
가면으로 유명한 ‘가이 포크스’는 실패한 혁명가이지만
지금도 혁명을 상징하는 의미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원작자는 영화화의 엔딩을 좋아하지 않지만
나는 그또한 괜찮게 엔딩을 냈다보고 있다.
하지만 브이가 이비를 대하는 과정을 보면
만화의 엔딩이 좀 더 이비의 캐릭터성을 부각해준다.

악인은 과장되었는가?

이 작품에는 다양한 악인이 나온다.
그들이 만화처럼 악당이라는 상징을 부각하며
거창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 ‘충실’하면서 빈틈으로
욕심을 채우는 소시민일 뿐이다

전쟁때 겨우 남은 인형콜렉션이 부서진다고 멘탈이 붕괴되면서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자나

잘난듯 존경받는 모습으로 일장연설을 취하고
뒤에서는 더러운 일을 일삼는(ㅇㅅㅌㅇ이 떠오르기도 하고 ㄱㅌㄹ추문이 떠오르기도 한다)자,

방관자
(그래도 이 사람은 적어도 자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타인에게 판단을 맡기는 사람들.

앞의 인물들은 특정 상황에 나오는 만화 속 인물이지만
마지막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히틀러는 결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정의의 여신이 마치 한 사람의 여자인 것처럼 말하는 비유가 인상깊었는데, 현대사회에서 물질적 부를 숭배하는 이들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걸 인간의 본성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그들의 행위가 정의의 여신을 창녀로 타락시킨 것이다.

브이와 이비의 사랑


작중에는 다른 인물들의 성적인 묘사가 나오지만 브이와 이비의 사랑은 결코 성애가 아니다. 브이는 이비의 아버지가 아니지만 그녀에게 미움 받을 각오를 하면서 철저히 훈련시킨다.

브이의 과거를 암시할만한 장면이 간혹 나오는데
(이건 닥터 맨해튼이 생각났다)
이비를 택한건 그녀가 가진 순수성이
한때의 자신과 흡사하며, 그걸 다른 이들에게 더럽혀져
타락하게 놔두느니 그녀가 이 사회에서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습득하게 한거라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본질을 보면 외로웠던 그가 그녀와 지내면서 정신적인 교감을 하고 서로 이해한게 아닐까 싶다.

그들은 너를 피해자로 만들었단다, 이비.
너를 통계의 일부로 만들었어.
하지만 그건 진정한 네가 아니야
그건 내면의 네가 아니란 거지.
날 믿어. 이비. 그럼 우린 그것들을 전부
지울 수 있어. 그 모든 아픔, 그리고 부모님들을
여읜 것에 대한 상처.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소음은 그 앞에 오는 고요함과 연관돼 있어.
그 고요함이 절대적일수록 뇌성은
더욱 충격적으로 들리지

우리의 주인은 민중의 목소리를
몇 세대 동안이나 듣지 못했어, 이비…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은 것보다 훨씬 더 큰 소리지.

달콤한 안위만 주었다면 그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을 거다. 마지막에 이비는, 그가 사랑하는 이를 스스로 살려낸다. 앨런 무어의 만화에서는 사회에서 낮잡아보여지는 개인이 사회를 뒤바꿀만한 큰 힘을 가지며 끝나는데, 이는 현실에서처럼 혁명이라는 것이 한순간의 열기로 뒤바뀌는게 아닌 개인의 변화로 이뤄지는 걸 의미하는 듯도 하다.

뛰어넘고(vaulting)
방향을 바꾸고(veering)
나를 피해자(victim)로 만든
가치(values)위에 토한다(vomiting)
광대함(vast)과
신선함(virginal)을 느끼며…

이것이 그가 느낀 것인가?
이 힘(verve), 이 생명력(vitality)…
이 장면(vision)을.
이 길을(la voie).
이 진실(la verite)을…

이 인생(la vie)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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