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51) - 삼체(~3부통합)

영원한 것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이 시리즈에서 특별히 내세운 주인공은 없다. 그럼에도
읽어나가는 것이 의외로 복잡하지는 않았는데, 주인공들의 공통적인 목적이 생존과 체제에서의 저항이기 때문이다. (저항의 형태는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간혹 비문학 과학 분야 서적을 읽을때 이론을 설명하면서 예시로 간단한 이야기를 드는데 이건 그 반대라 보면 될거같다. 과학 지식들은 이 책에 상세히 설명된 부분도 있어 읽기 어렵지않은데, 비슷한 분야(특히 초끈이론이나 블랙홀 관련 전반)를 읽으면 도움이 된다.

굵직한 시점 이동은(각 권의 주인공이 그들은 아니지만) 예원제 > 뤄지 > 청신 순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보니 엔딩이 청신(&관이판)으로 마무리되는 게 다소 완벽한 결말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소설이 의미하는 전체적인 흐름이 마무리되는 시점일 뿐 그 마저도 끝이라고 단언할 수 없기에, 결국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가 우주에서 일어난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작품에서 가장 이입이 되는 캐릭터는 뤄지이다. 그가 딱히 천재는 아니지만 굵직한 전개에서 가장 영웅다웠는데, 그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 영웅스럽지 않고 개인에게서 나온 행동원리였기에 더욱 응원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수많은 캐릭터가 오판했다고 비난 받다가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상황에 좌절해 선을 넘거나 죽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뤄지는 삼체인이 왜 유일하게 두려워했는 지 알 수 있는 인격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하여금 삼체세계가 그를 두려워하게 만든 단서를 준 것은 삼체를 불러냈던 예원제이다. 이처럼 소설의 전개자체가 하나의 초끈이론처럼 시간이라는 큰 장애물을 ‘동결’이라는, 이 책에서 가장 공상과학스러운 요소로 사람과 사람이, 사건과 사건이 이어진다.

지구 사람들은 땅에 향수가 있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아버지가 딸에게 이런 말을 해요. ‘얘야, 이 세상에서 네가 목숨 걸고 싸우고 피를 흘릴 가치가 있는 건 오직 땅뿐이란다.

<인터스텔라>와 비교했을때 이 소설에 또 놀랐던 점은 동양철학과 문학, 예술, 영화, 종교, 역사같은 인류사의 종합적인 부분도 자연스럽게 다룬다는 점이다. 3부에서 본래 세계와 별 다를 것없는 우주, 지구를 마주하는 것도 윤회사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뿐인가. 위기를 정치로 이용하며 잇속을 차지하는 인간 군상이나 이기적인 존재도 현실적으로 잘 드러낸다. 하나의 유기체처럼 소설의 세계관이 정말 어딘가에 있을 세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가끔 조용한 밤이면 누군가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 왕국을 떠난 노주와 장범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이야기였어. 저마다 다른 이야기였지만 두 사람이 신기한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고 바다처럼 드넓은 육지에도 가보았을 것이라는 상상은 모두 같았어. 영원히 항해하며 어딜 가든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말이야.

이 소설에서도 사랑은 꽤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이 부분은 소설의 비현실성이 적용된걸까? 세상 누가 친절 좀 베풀었다고 별을 덜컥 선물하고, 우주를 선물할까. 일전 어떤 작품에서 사랑하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실은 사랑하던 사람을 그리워하는 자신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청신이 윈톈밍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고 윈톈밍의 사랑이 청신에게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다. 이 사랑은 말그대로 서로를 구원하기 때문이다.

윈톈밍과 청신의 대화가 동화로 표현되는 건
그만큼 그 이야기가 붉은 신호를 보낼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할 강한 힘을 가졌다는 은유가 아니었을까.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이 아니라고. 유물론자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나는 역사를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불행하게도 평범한 일생을 살지 못했다. 내가 걸어온 길은 사실 문명이 걸어온 길이다.

이 소설의 엔딩은 누군가에게는 다소 허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엔딩이 오히려 현상이나 환경에 집착하기보다 개인에 집중할 것을, 개인의 의지가 세계에 대항할만큼 얼마나 강한 힘를 가질 수 있는지를 시사하는 것 같다. 인간이 찬란하게 이기는 이야기보다는 인간이 위기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에는
자신이 별인줄 알았지만 반딧불이었다는 가사가 나온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개미 한마리가 놀라운 일의 유일한 목격자가 되기도 한다.

나라는 작은 우주가 절망속에 빠진 다른 이를 살게할 수 있음을 잊지말자. 우주조차도 유한하지 않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리뷰(53) - 엘러건트 유니버스  (0) 2026.03.01
책 리뷰(52) - 침묵의 봄  (0) 2026.02.27
.  (0) 2026.02.20
삼체 2부 - 재밌다  (0) 2026.02.19
삼체 1부 감상  (0) 2026.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