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들어 버릴거야? 스러져 버릴거야?
페미니즘 문학의 정수로 알려져있는 버지니아 울프의 책.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유명한 저자의 글이 다소 난해하게 읽혔지만 비슷한 기법의 <피네간의 경야>를 읽으니 어느정도 수월하게 읽혔다.(…)
한폭의 그림같이 당대 여인들의 삶이 상세히 그려져있지만 등대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핵심은 심오하다. 즉 페미니즘이라는 프레임으로 이 책을 판단한다면 많은 중요한 메시지들을 놓치게 된다
(시대상이 그랬던 만큼 현대에 와 부정적인 인식을 감안하고 봐야하긴 한다)
특히 공감이 갔던 부분은 ‘예의’에 대한 언급이었다.
성별로 갈라치기를 하는 양상이 심한 요즘(이 시대보다 미래인데도 심해지면 심해졌지)어떤 의미에서는 이 논쟁의 가장 핵심을 찌른게 아닐까 싶고, 이건 칸트의 책에서도 반대 성별의 입장으로 예를 든다 - 한마디로 성별 이전에 인간다운 존중이나 예의가 없다는 것.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배려가 그토록 놀랍게 결여된 채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 문명의 엷은 베일을 그토록 제멋대로 거칠게 찢어 버린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인간다운 예의를 무참히 짓밟는 것으로 여겨져서 -
그녀는 그와 함께 등대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러니 차별을 운운하기보다 개인의 무지함을 각 성별의 대표인양 무례하게 구는 이들을 경계하길 바란다.
그녀를 그저 단순히 한 여자로 생각한다면 다소간 괴짜로 취급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미모와 남자들이 그 미모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에 싫증이 난 나머지 그 우아한 자태를 벗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눈에 띄지 않게 되고싶다는 잠재적인 욕망이 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편 당대 여성의 자아인식에 대한 부분이 여성 등장인물을 통해 바통터치식으로 이어지면서 확장되는 것도 볼만한 서사다. 램지부인은 어떤 의미에서는 씨앗 그 자체로도 중요한 인물이라 볼 수 있다.
때론 페미니즘을 논하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어른을
무시하는 성향을 더러보지만 어떤 사상이든 시작은 미미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세대 또한 마찬가지로 다음 세대에게는 부족한 세대일 수 밖에 없으니.
그러면서 작가의 은유가 감탄스러웠다.
특히 사상을 피아노 건반이나 알파벳에 비유한게 좋았다. 단 하나의 사상만을 맹신한다면 그 무엇도 만들어질 수 없다.
페미니즘을 표방하지만 여성의 관점에서 쓰였을 뿐 생각할 거리는 많아 머리가 복잡하다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쓸데없는 수다로부터, 삶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이 가공할 숙적의 면전으로 끌려 나가는 듯했다. 이 다른 것, 이 진실, 이 실재가 갑자기 그녀에게 손을 뻗치고는 외관들의 등 뒤에서 불쑥 나타나 그녀의 주의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녀는 반쯤은 내키지 않고 반쯤은 마지못한 심정이었다. 왜 항상 밖으로, 멀리 끌려 나가야 하는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게 다였다 ─ 단순한 질문이지만, 해가 갈수록 죄어드는 것이었다. 위대한 계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 대신에 사소한 일상의 기적들, 어둠 속에 뜻하지 않게 켜지는 성냥불처럼 반짝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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