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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계획

020. 오갈데 없는 분노

그들은 동족의 원한이 전부 관리인에게 있다는 양 그를 노려보았다. 물론 그중에는 이성적인 자들도 있어 문제의 원인이 관리인에게 있지만은 않다는걸 지적했지만, 대중은 잠정적으로 그동안 쌓여온 분노의 표출에 동의해 침묵을 유지했다. 관리인은 자신이 목숨이 태풍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사실을 직감했다. 당장 그들이 바다로 자신을 끌고들어가도 즉사였다. 특유의 냉정함으로 그들의 분노가 특정 종족에 대한 원한인걸 알아챘지만, 이는 이성적으로 설득해서는 될 일이 아닌 것도 가장 잘 아는 것이 그였다. ‘너머’에는 이런 종족이 가득하니까.
화풀이 대상으로 갈기갈기 찢어죽는 게 결말이라면 받아들이겠지만, 그들의 분노의 원인으로 미루어보아 이 분노는 자신이 바위 뒤에 숨겨둔 일레인에게도 쏟아질 것이 분명했다. 이쯤되니 관리인은 자신이 생각해도 일레인에게 답지않게 신경을 쓰고 있다 자각했으나 - 어쩌겠는가, 일레인과 쏙 빼닮았는걸. 행여나 그녀의 후손이면 더욱더, 복잡한 심경을 느낄 수 있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일것이다.
해결책을 궁리하는 와중에도 - 그럴 처지가 아닌건 알았지만 - 인어들을 속이고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어떤 사건이 벌어진 직후였던지라 분노 이전에 상처로 가득했다. 관리인은 그것에 대해 캐내보려했지만 그들을 선동하는 인어가 인간이라는 점을 꼬집으며 관리인에게 비아냥댔다.

-인간주제에, 이제야 사냥감의 감정에 흥미가 생겼나?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이 여기서 죽으면 여왕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여왕이 문제가 아니다…자신은 이곳에서 사명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자신이 죽으면 생 자체를 유지못할 가련한 존재가 있으니까. 자칫하면 그들의 분노가 그들 종족에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걸 어떻게 설명해줘야할까. 날카로운 삼지창의 끝이 코앞에 와닿았음에도 관리인은 이성을 끝까지 유지하려했으나…

상황이 역전되는건 순식간이었다.
인어들은 비명을 질렀다.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들은 움직이지 못했다. 관리인은 고개를 들어 상황을 파악하려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건강해보이는 일레인이 어린 인어를 안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듯했으나 마주한 상황에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대체 인간주제에, 이 많은 쪽수를 상대로 무슨 대책이 있단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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